전시작가Ally McIntyre, Gary Komarin, Kostas Papakostas, 허보리
아트스페이스 호화는 10월 29일부터 11월 27일까지 기획전 《The Gestures》를 선보인다. 해당 전시는 근래의 추상 회화 혹은 추상화된 구상 회화 속 아티스트의 신체적 움직임, 즉 '제스쳐(gesture)'에 주목하고자 기획되었다. 게리 코마린, 코스타스, 허보리, 알리 매킨타이어 이상 4인의 작가들은 모두 다른 연령대와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고유한 제스쳐로 새로운 형태와 리듬을 평면 위에 자유롭게 구현한다. 이렇게 화면에 새겨진 4인의 붓질은 미술의 재현적 성질에서 벗어난 실존하는 몸 자체이며, 그 열린 몸으로 세계를 전유한다. 본 전시에 참여하는 이들의 개괄적인 작업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게리 코마린(U.S.A, b.1951)은 대담한 터치와 색감으로 독자적인 추상 회화를 전개해 온 대표적인 미국 후기 추상 화가다. 작가는 주로 유년시절에서 비롯된 일상적 경험과 소재들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으며, 이를 산업용 페인트나 방수포 등 비전통적 재료를 통해 색채의 명암 대조가 강하고 선적인 요소가 강조되는 탈회화적 추상으로 재해석한다. 원초적 감각에 경도되어 그린 코마린의 유희적 제스쳐들은 페인팅 그 자체에 중점을 두며, 우아함과 질박함, 절제와 자유로움을 등 한 화면 안에 대립되는 미감을 함께 아우른다.
코스타스 파파코스타스(U.K, b.1976)는 일 획의 커다란 물결 무늬 붓질로 신체 제스쳐와 운동감이 느껴지는 모노톤의 추상회화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캔버스를 바닥에 뉘인 뒤,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직관적으로 붓을 휘두른다. 행위자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남은 평면 위의 붓질은 원시적 안무의 흔적이며, 무한한 상상을 펼치게 만드는 도화선이기도 하다. 즉흥적 감흥을 통해 만들어진 코스타스의 유기적 리듬들은 고유한 흔적이기에, 마치 지문(fingerprint)과도 같다.
허보리(KOREA, b.1981)는 전쟁터와 같이 치열한 삶의 단편들을 설치와 페인팅을 오가며 표현한다. 최근에는 우거진 꽃과 초록의 모습을 평면에 추상화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연 풍경을 전경이 아닌, 장면 일부분을 크롭하여 추상적 화훼 그림으로 전개한다. 속도감 있는 필치로 화면 가득 균질하게 그려낸 뒤엉킨 식물 이미지는 강한 생명 의지를 뿜어내는 동시에 자유로운 선과 색의 충돌로 말미암아 의미에 구속되지 않은 순수한 회화의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알리 매킨타이어(U.K, b.1991)는 자연에서 포착한 야생 동물과 형광색의 드로잉 선과 색면을 함께 그려 그래피티적 요소가 강한 추상적 구상화로 구축한다. 그의 회화에서 일부분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것보다는 색이나 선과 같은 조형 요소를 부각하여 ‘전체’로서 인식되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는 고향인 캐나다 대초원에서 마주친 다양한 동물들을 자신의 감정을 대신하는 매개체로 상정하며, 이를 부분적으로 해체하여 화폭에 표현한다. 그리고 그 주변을 낙서하듯 변칙적으로 붓질하여 개인적 상실에서 비롯된 고통을 상쇄하고 치유한다.
본 전시의 제목 ‘The Gestures’는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저서 『몸짓들: 현상학 시론』 에서 차용했다. 이 책에서는 몸짓이라는 인간 특유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 존재를 해석하고, 그에 대한 이론을 세우고자 노력한다. 전시 《The Gestures》는 미술, 특히 회화에서의 몸짓으로 그 의미를 좁혀 바라보고자 한다. 회화가 단순한 재현의 영역이 아닌 작가의 주관과 내면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모더니즘으로 넘어오면서, 제스쳐는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적 요소이자 몸과 세계를 긴밀히 연결하는 도구로서 발전하게 된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 또한 각자의 몸짓으로 이미지 표현의 확장과 그들의 현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보는 이는 그 붓의 궤적을 쫓으며 추상 이미지 밖의 형상과 의미를 상상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회화들 또한 관람객으로 하여금 기존의 갇힌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을 발아하게 만든다. 《The Gestures》는 추상 미술 속 제스쳐를 통해 그림 속으로 틈입하고, 프레임 너머로 그 이미지를 무한히 확장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이다.